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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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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정양공(定襄公) 태자태사 휘 홍열(諱 洪悅) 제단비문
  • 01.정양공(定襄公) 태자태사 휘 홍열(諱 洪悅) 제단비문
  • 02.충숙공(忠肅公) 상대등 휘 영(影) 묘비문
  • 03.직제학공 휘 신윤(莘尹) 묘 갈명 (해설)
  • 04.가선대부 행 예조참의 휘 장손(長孫) 묘갈문 (해설)
  • 05.자헌대부 行 이조판서 행주殷公 휘 여림(汝霖) 제단비문(해설)
  • 06.자헌대부 行 이조판서 휘 여림(汝霖) 묘비문
  • 07.참봉공 휘 서(庶) 묘표(墓表) (해설)
  • 08.통훈대부 행 함열현감 행주殷공 보형(寶衡) 묘갈명
  • 09.통훈대부 행 영천군수 殷공 휘 림(霖) 묘갈명 (해설)
  • 10.통덕랑 돈수(遯) 행주殷공의 묘비문 (해설)
  • 11.첨사(僉使) 행주 殷공 제단비 (해설)
  • 12. 行 훈련원 판광공 휘 몽량(夢良) 묘갈명 병서 (해설)
  • 13. 태수공(怠公) 휘 윤매(允梅) 묘갈명 병서 (해설)
  • 14.증 호조참판 행주 殷공 득언(得彦) 묘갈명 (해설)
  • 15.증 통정대부공 휘 지오(之五) 묘갈명
  • 16.통정대부 행주殷공 휘 덕항(德恒)의 묘갈명

행주은씨 시조이신 정양공의 휘는 홍열이요 시호는 정양이시다. 삼가 살피건대 공은 은왕 성탕의 후손이시며 그 원조는 현왕설(玄王契)이라 이른다. 정양공께서는 학덕을 겸비한 당나라 석학으로 신라 문성왕의 청에 따라 당 선종의 천거로 동래(東來)하신 팔학사중의 한 분으로 학문과 예악을 가르치시고 만년에 행주에 전거(奠居)하시니 후손들이 행주를 본관으로 삼는 까닭이다.

공은 신라조에서 관(官)이 태자태사에 이르시고 학식과 덕망이 일세를 풍미하였으므로 고려조에서도 그 유덕을 기려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랑 보문각대제학으로 추봉되었다.

공의 후손들이 대대로 번성하여 많은 명신(名臣)과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신라 효공왕조에서 벼슬이 대각간에 오르신 휘(諱) 영(影)은 왕의 비정(秕政)을 바로잡은 충신으로 고려조에 의해 태보(太保)에 추봉(追封)되시고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시다. 고려 태조조의 휘 영(寧)은 후백제 견훤의 침공을 무찔러 큰 전공을 세운 무신으로 벼슬이 원보(元甫)에 이르셨다.

문종조의 휘 정(鼎)은 벼슬이 문하시랑에 이르시고 시호는 문충이시며 사학(私學)12도의 하나인 문충공도를 일으켜 사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충열왕조의 휘 홍순(弘淳)은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셨고. 충숙왕조의 봉상대부 민부의랑 증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이신 휘 의(毅)와. 충정왕조의 보문각대제학 시호 양열공(襄烈公) 휘 신윤(莘尹)에 이어.

조선 태조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자헌대부 행 이조판서를 역임하신 월담공(月潭公) 휘(諱) 여림(汝霖)을 비롯한 여러 명신과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휘 여림의 세분 아드님이신 통헌공(通憲公) 휘 현(顯)과 판관공(判官公) 휘 보(輔)와 진사공(進士公) 휘 익(翊)을 파조(派祖)로 받드는 후손들이 전국에 산거(散居)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활동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시조 정양공의 높으신 음덕으로서 공의 후손 된자 어찌 그 유덕을 흠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공의 사적이 모두 유실되고 다만 칠언율(七言律) 한 수(首)가 남아 있을 뿐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詩)는 신라 문성왕 20년(서기 850) 당에서 오실 때부터 의형제를 맺고 우의가 두터웠던 공(公)을 비롯한 홍(洪), 기(奇), 길(吉), 봉(奉), 목(睦), 방(房), 위(魏)의 팔학사(八學士)께서 남양(南陽) 어풍정(御風亭)에 오르셔서 서로의 포부와 경륜을 피력하시다가 각각 시(詩) 한 수(首)를 읊었 을 때 공이 남기신 칠언율(七言律) 시(詩)는 다음과 같다.

등등금악면창망(登登錦嶽眄滄茫) 신보층암근태양(信步層岩近太陽),
구만북진의예이(九萬北辰宜曳履) 삼천동해가건상(三千東海可?裳),
서담서요연경제(西膽庶?燕京帝) 남망장금일본왕(南望將擒日本王),
영략승구무한경(領略勝區無限景) 빙허의가대붕상(憑虛疑駕大鵬翔).

그 문장이 웅장하고도 우아하며 애향애국의 충정이 잘 나타나 있어 후학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공의 고상한 지기와 혁혁한 자취를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생각된다.

공의 묘소는 파주 파평산 서록(西麓)의 동쪽 십리(十里)쯤 되는 곳에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모시었고 충열비(忠烈碑)는 고양군 원당면 구파발에서 수리(數里)쯤 되는 하파발 명릉(明陵)일우(一隅)의 큰 길가에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실전(失傳)되었고 배(配) 정경부인 연안이씨는 연안백 이무(李茂)의 후손 이신대 그 묘역 또한 찾을 길이 없다.

아! 슬프도다. 천유여년(千有餘年)의 역사변천 속에서 공(公)의 유적이 이처럼 유실되고 묘소마저 찾을 길 없으니 후손들의 송구하고 한스러운 마음 무어라 형언할 수 있으리요. 이에 종중(宗中)에서 여러해 동안 협의한 끝에 정성을 모아 이곳 용인 무봉산 앞 기슭에 모신 양열공(襄烈公)묘역 청룡등(靑龍嶝) 남록(南麓) 자좌원(子坐原)에 제단을 모아 영세토록 추모코자 삼가 이 비(碑)를 세우는 바이다.

서기 1989년 4월
전 성균관대학교 총장 문학박사 남계 조좌호 근찬(謹撰) 후예(後裔) 우석 필수(弼洙) 근서(謹書)
행주은씨 대종회 건립대표 성의(成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