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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은씨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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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은씨의 시조이신 장양공(定襄公)의 이름은 은홍열(殷洪悅)이시다. 시호(諡號)는 정양이시며 공은 학덕을 겸비한 당(唐)나라 석학으로 신라(新羅) 문성왕(文聖王)의 요청에 따라 당 선종(宣宗)의 천거로 서기850년(唐선종5년) 동래한 八학사 殷(은)氏, 洪(홍)氏, 奇(기)씨, 吉(길)씨. 奉(봉)씨. 睦(목)씨. 房(방)씨, 魏(위)씨 중의 한분으로 학문과 예악을 가르치고 신라조에서 벼슬이 태자태사에 오르고 학식과 덕망이 일세를 풍미하였으므로 고려조에서도 그 위덕을 기려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화시랑 보문각대제학(壁上三韓三重大匡 文化侍郞 寶文閣大提學)으로 추봉되었다, 공이 말년에 행주에 전거하니 후손들이 행주를 본관으로 삼아 행주 은씨가 되었고 본관은 행주 은씨 단일본이다.

고려조 문종때 문화시중(文化侍中)을 역임하고 학문이 뛰어나 세상에서 12공도라 칭하고 사숙(私塾)을 열어 많은 후진을 길러낸 8세손 휘 정(鼎)이 유명한 학자였으며, 충정왕조에서 보문각대제학을 지내신 16세손 휘 신윤(莘尹) 양열공(襄烈公)께서는 총명하시고 문학에 탁월한 학자 이였으나 충성심이 강하여 태종이 누차 불렀으나 불응하신 고려충신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두 분 모두 고려통일대전 공신각에 봉향 되셨다.
조선조에서는 18세손 행주은씨의 중시조인 이조판서 월담공(月潭公) 휘 여림(汝霖)이 뛰어났다, 정양공은 예조참의를 역임한 휘 장손(長孫)의 아들로 1396년 (태조5년)문과에 급제하여 영천군수,우헌납, 진주목사.경주부윤 등을 거쳐 세종조 1420년(경자) 에 이조 판서에 오르셨으며 세 아드님을 두시어 제1자 휘 현(顯)은 통헌공파의 파조이시고 제2자 휘 보(輔)는 판관공파 파조이시고 제3자 휘 익(翊)은 진사공파의 파조가 되셨다.
그 외 현종과 숙종 때의 학자로 이름난 30세손 휘 정화(鼎和)는 최서림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으신 일명 백계(柏溪)선생으로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 용계서원(龍溪書院)을 세워 후학을 길러 오늘날에도 유림들이 시사를 봉행하고 있으며 백계선생 문집이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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