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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희성은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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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씨는 희성이다.
(주 : 1930년 현재에 1103가구 8,329명, 1961년 국노 조사에는 오기되어 있고, 1977년 현재 약 25,000명 추정)

희소가치라는 말은 경제학술어로서 물품이 적으면 적을수록(희소하면) 가치(값)가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학의 통례이고 성씨의 희소성만은 반드시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한국의 성씨 은씨는 예외적으로 희소가치를 지닌 성씨라고 말하고 싶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해본다.

  • 첫째 은씨는 통지(通志)(당나라 두우 찬, 200권)의 씨족략(略族氏), 이국위대(代爲國以)조에 의하면 "황하문명(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의 주체국가인 은국(夏,殷,周 3대의 은을 말함)의 나라 이름을 따서 은의 후예들이 창씨한 성씨이기 때문이다. 곧 은씨는 황하문명의 주체족인 은국 (BC 1600~BC1028)의 후예들이다.
  • 둘째 은족(=은씨)은 본래가 지나족(支那族)의 조상이 아니오, 난생신화설(神話卵生說)(박혁거세, 김알지, 고주몽등도 마찬가지)의 건국신화를 갖는 정통동이족(=한국족)이라는 사실이다. 종래의 동야고전은 이 사실을 은위동이(殷爲東夷)(은은 동이인이다.)라고 표현해 왔지만 자유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은민족은 조선족이다.(은위조선)라고 직설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황하문명(그것은 동양문명의 조상)이 조선족인 은씨의 주도로 창조되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 셋째 황하문명의 핵이요, 꽃이요, 열매는 지금도 동방문화권을 주도하고 있는 한자문화이다. 그런데 세계최고의 표의(表意)문자인 한문(실은 환문으로 적어야 함)은 은나라의 문자 은문(殷文)(갑골문자, 은허서설, 복사점복문자 등의 별칭 있음)이 발전하여 이룩된 것이기 때문에 한문의 주체족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족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방증이 있으니 현용 한자옥편(강희자전 대한화사전, 대한자사전 등등)의 반절음(反切音)(옥편상의 한자발음기호)이 모두 중국발음이 아니고 한국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용옥편상의 한자 53, 525자가 글자 하나의 예외도 없이 완전히 한국발음으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 이는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현용옥편상의 한자발음이 백%(100퍼센트) 한국발음으로 표기된 반면 중국어의 발음과는 판이한 발음기호로 표기되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 상술하겠음.

  • 넷째 동방문화권은 유교문화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유교의 대종사 공자님 자신이 은인(殷人)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공자님 스스로가 조선인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님이 자기의 도가 중원땅 산동반도(노나라)에서 행해지지 않는 것을 슬퍼하여 구이(九夷)(동이의 아홉갈래 -9파- 를 말함, 곧 동이를 말함.)의 땅에 가서 살고 싶다." (논어, 자한ㆍ13)고 한 것이다. 더욱이 맹자는 자지도예도야(子之道穢道也)라 하였으니 곧 "공자의 도는 예맥(穢貊)(조선)의 도다."라고 함으로써 공자가 예맥조선인임을 직설하였다. 그런데 정작 공자님은 은나라 사람 송미자의 제40세손임을 주지하는 바다. 결국 공자님도 동이인, 은족의 후손이다.

이상의 네가지 사실은 한국의 희성인 은씨가 희소가치를 지니는 이유이며, 또 한국의 희성 은씨가 한국역사와 동양문화사속에서 값비싼 긍지와 자부를 느껴야 할 대목들이다.

이제 위에서 열거한 네가지 대목을 보다 넓고 깊게 상고해 보기로 하자. 먼저 행주은씨 세보(인)의 계고편(稽古篇)(옛을 생각하는 편.) 서문을 검토한다.

按古史 殷之爲氏 實古商祖契 子姓之裔 成湯代夏 因舊以爲有天下之號 而盤庚之遷) 始改曰殷 後殷之孫 子因氏爲姓焉.

생각건대 고사에 은(殷)을 「은씨」라 하였는데 실은 옛날 상(商)(은(殷)나라의 구호) 나라의 시조인 설(契)(설이라 읽음.)의 성인 「자(子)」성의 후예들이다.(주 한 대이전에는 성과 씨를 구별하여 썼다.)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자.설(契)의)이 하국을 멸하고 대립하자 구호인 상(商)으로써 천하지호(국호)를 삼은듯한데, 상(商)이 수도를 반경(盤庚)(은의 19대왕)대에 경(耿)(지명 산서성)으로 부터 은(殷)(여기서는 지명 하남성언사현)으로 옮긴 뒤 비로소 은(殷)(국호)이라 칭하게 되었다. 뒤에 은의 후손들이 성인 「자(子)」를 씨인 「은」에 쫓아 은성(殷姓)이 된 것이다.

은족의 성은 본래 「자(子)」씨였다. 그러던 것이 은나라가 멸망한 후 송나라(송미자의 나라 미자는 은인.)에 살던 은(殷)인들이 은성(殷姓)으로 창씨한 것이다. 그 사료는 다음 「통지」(은나라 두우 찬?이백 권)의 「씨족략」「이국위씨」조이다.

至紂 爲周武王所滅 封微子於宋 以奉湯祀 基子孫不得封者 以國爲氏 (通典 氏族略以國爲氏)

은(殷)나라 말왕 폭군주(제신30대왕)가 주나라 무왕에게 토멸되고 미자(은인)는 송나라에 피봉되어 은나라 탕왕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은국의 자손으로써 제후에 임명되지 아니한 자는 그 나라의 이름 은(殷)을 성씨로 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던 은씨는 거금 3000여년의 연혁을 지닌 희귀한 고대 성씨임에 무위하다. 더욱이 항하문명의 주체족인 동이의 나라 은의 국호를 쫓아 성씨가 되었다는 사실은 동양문화 속에 차지하고 있는 은씨(殷氏)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종래 은씨 내지 은국을 논하는 자 의례히 은씨의 시조는 중국 사람이요, 은족은 중국민족이요, 황하문명을 개발한 은나라 역시 중국이라고 정의?맹단해 온 것이 사실이다.

어디 은씨 뿐이랴? 종래의 그릇된 역사관과 문화사관은 한국족을 모조리 중국족의 후손으로 둔갑시키는 횡액을 입게 했던 게 사실이었다.

종래의 은씨 족보(행주은씨세보)도 한국 은씨의 출발을 고작 신라문성왕(46대 839~857) 때 곧 당나라 15대 무종(840~846)연대에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악으로써 신라를 교화시킬 수 있는 문학 지사를 신라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 결과 은(殷), 홍(洪), 기(奇), 길(吉), 방(房), 위(魏), 목(睦), 봉(奉)씨 등 8학사가 래조하여 오늘날 한국 은씨의 조상이 된 것처럼 기술하였다. 신라 문성왕 때라고 하면 통일신라 때로서 거금 1140년 전의 일이요, 북방에는 후고구려인 발해제국이 만주대륙 전체와 연해주(소련領) 및 북중국에 까지 영토를 넓혀 명실상부한 해동성국을 이루고 있을 때이다. 말하자면 한국사가 지금처럼 반도사가 아니요, 정통과 긍지로 빛나던 대륙사관년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에 있어서나 국력에 있어서나 당나라에 문화적 의뢰를 할 만큼 미개한 신라는 결코 아니었다.

은씨, 기씨, 홍씨……등 8학사가 신라에 래조한 것이 사실인지 모르나 「신라조 견사중국청특문학지사 교비예악……」(행주은씨 세보)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항차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성왕조에도 비슷한 기사는 실려 있지 않다. 그러므로 8학사 래조의 사실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 사대주의적인 래조 경위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불금케 한다.

각설 백제왕실의 성씨가 부여씨이며, 백제 8대 성씨가 사(沙), 연(燕), 리(?), 해(解), 정(貞), 국(國),목(木), 묘(苗)씨 등인데 그 태반의 성씨가 희성화 했거나 절대(絶代)하고 말았다.

참고

百濟國中大姓有八族 沙氏, 燕氏,?氏, 解氏, 貞氏, 國氏, 木氏,苗씨
(隨事卷八十一 列傳四十六 東夷 百濟)

고려왕실의 왕성(王姓) 역시 희성화 하였으니 역대제왕의 성씨치고 신라김씨(金氏), 전주이씨(李氏)를 제외하고는 절대했거나 희성화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서도 주대의 제왕성씨들이 희소가치를 지니는 이유가 엿보인다.

신라김씨(金氏), 전주이씨(李氏)(이씨조선)는 그 정권이 정변이나 전쟁을 통하여 교체되지 않고 평화리에 이양되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어찌되었든 은씨(殷氏)를 논하면서 하(夏), 은(殷), 주(周) 3대의 은을 논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고 황하문명 개척자-은을 외면하고 은씨(殷氏)를 논한다면 논리적 모순을 자초한다.

항차 항하문명과 갑골문자의 주인공 「은(殷)」을 한국사의 정통왕조(남조 사회)로 보는 사관이 정향되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전기한 행주은씨 세보의 8학사 초빙설과 같은 궁색한 이론이 도출 될 수밖에 없다.

바라건대 한국의 역사적대성인 희성 은(殷)씨 제위 게서는 정통적 동이족으로서 중원대륙에 진출하여 한국사의 「남방(남조) 문화권」곧 황하문명을 개척한 순임금(BC?2255~BC?2208)의 직계후손인 「은나라」(BC?1600~BC1028)가 바로 은성(殷姓)의 대종가임을 분명히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동방문명의 여명기에 문명의 횃불을 들고 출현했던 은씨족의 긍지와 영광을 가슴속에 아로새겨 간직하길 바란다.

이제「은인(殷人)」=「동이인」=「조선인」의 논증을 소개한다.

孟子言 舜東夷之人也 今人推得 舜爲殷人之祖 殷人爲東夷 興於東方 (中國史家 林惠祥 中國民族史 第四音十)

「맹자」(리(離)루장구하)에 말하기를 "순임금은 동이인이다"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고증해 보니 순(舜)임금은 은인(殷人)의 조상임을 알게 되었다. 은인은 동이이다. 동방에서 일어나다.

「맹자」(리(離)루장구하)에서는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임금은 제빙에서 출생하여 부하로 옮겨 살다가 오조에서 별세하셨으니 동이의 사람이이다"라고 하였다.

孟子曰 舜生於諸憑 遷於負夏 卒於嗚條 東夷之人也. (孟子?離婁章句下?一)

이렇게 하여 은인(殷人)의 조상은 동이인의 순임금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있다.

다시 임혜상(중국사가)의 중국민족사는 말한다.

"은인은 동이인 인데 동방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은(殷)이 망한 후 기자가 동쪽으로 조선에 망명했는데 조선 역시 은씨족이 거하는 땅이기 때문이다."

(殷人爲東夷 興於東方 而殷亡後 箕子東走朝鮮 朝鮮亦爲 殷氏族所居之)

여기서 임혜상은 「조선은 은민족(殷民族)이 사는 땅이다.」곧「조선은 은(殷)이다.」하는 가설을 세웠고 고는 심지어 「기자」가 조선으로 간 것은 자기의 고국으로 되돌아간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까지 내리고 있다.

(箕子走之朝鮮 其返其故國耳)……中國民族史

뿐만 아니라 「은(殷)은 조선이다」의 고증은 고전적으로나 현대 중국 사학의 주장으로나 풍당하고 허다하다. 심지어 삼국유사도 당나라 사람 배구(裴矩)의 전기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唐裴矩傳之 高句麗本孤竹國云云 (三國遺事?記異卷 第一?古朝鮮)

당인 배구의 전에 가로되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이었으리라.

주지하는 대로 고죽국은 은나라 제후국의 하나로서 저 유명한 백이 숙제(伯夷 叔齊)의 나라이다. 오늘날의 북경근방이 그 고장이다. 그런데 고구려는 그 옛날 은나라의 제후국인 고죽국이 있던 은나라의 강역을 영토로 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것 역시 「은(殷)」=고구려(조선)의 간접시사라 하겠다. 이와 비슷한 논증은 중국의 현역사가 서량지의 다음 글이 있다.

古朝鮮之地何在?姜亮夫以爲朝鮮本殷民族的分布地(徐亮之 中國史前史話)

고조선(단군조선)의 땅이 어디였느냐? 강량부가 생각하기를 "조선은 본래 은민족(殷民族)의 분포지다" 라고 했다.

고조선(단군조선)의 땅이 은민족의 분포지라고 하는 이 말이야 말로 「은인(殷人)은 곧 고조선인 이다」의 결론을 말하는 것이다. 고전 속에 보이는 은족의 난생신화(알에서 태어난다는 설)는 바로 동이족의 정통적 신화를 말하는 것으로써 중국사가 강량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殷是古代東方民族的族名 本字當作夷 基所擧之?據 爲說文訓夷爲東方之人 太誓有 受有億兆夷人 離心離德"之語…….
殷亡後東方助武庚叛周 夷字爲射字之分化字 而殷人射?之事甚盛云 至於殷興朝鮮之關係 其?據 爲箕子王於朝鮮 朝鮮人之傳說 "頗與天命玄鳥降而生商" 的神話相近而當時的遼東朝鮮半島 或還是未成深洋云 按殷爲東夷之設?據頗多 太誓之 "受有億兆夷人" 一語 其爲明顯 脂於殷人與朝鮮關係則 ?據尙未充分.(姜亮夫?夏殷民族考)

은(殷)은 고대 동이민족의 이름이다. 「은자(殷字)」는 당연히 「이(夷)」자(字)와 같다. 그 증거를 든다면 ①설문(한문옥펀의원조)에 「夷를 東方人也라고 풀이한 것. ②서경의 태서편에 「受有億兆夷人離心離德」의 한 구절이 있는 것. 즉 "주(紂)가 억조의 동이인을 국민으로 갖고 있으나 마음과 덕이 이탈되었다" 한 것. ③은(殷)이 망한 후 동이인들이 주의 아들 무경(武庚)을 도와 은나라 복국운동을 했다는 것 등이다.

이자는 사자가 분화된 글자이다 그 이유는 은인(殷人)들이 사양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필자 주)갑골문자의 은자는 사람이 활을 쏘는 모습으로 보인다.또 설문에 이자를 종궁 종대라 하였으니 궁과 대를 쫓아 이가 되었다 했다. 역시사(쏜다)는 말과 유관하다]

은(殷)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동일족이라고 입증하는 증거는

  • 첫째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
  • 둘째 조선의 전설이 서경에서 말하는 「천이 명현조하여 강이생상 하라 하였다는」 이른바 난생신화와 아주 흡사한 것. 즉「하늘이 검은 새에게 명하여 내려가서 상(殷)나라를 낳으라고 하셨다」는 은(殷)의 시조 설(契)의 난생신화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
  • 셋째 당시의 요동반도?조선반도사이의 발해만이 아직 깊은 바다가 되기 전이기 때문에 육로로써 교통 왕래할 수 있었다는 것 등이다.

생각건대 은(殷)이 동이다 하는 설은 증거가 아주 많은 중에서도 전시한 서경의 「受有億兆夷人 離心離德」이라는 한마디는 아주 뚜렷하고 명백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조선과 은이 갈다」는 증거가 중분치는 않다』라고.

외국인인 중국학자가 「은(殷)과 조선은 동일민족이다」하는 진실을 규명키 위해 이토록 다각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정작 한국사학계의 노력이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를 돌이켜 볼 때 한심한 생각이 앞선다. 국사광복이 길은 아직도 험난하고 요원함을 통탄치 않을 수 없다. 차제에 한국 은씨의 대동보를 통해서나마 망각 명실된 조국사의 일부가 복원되어 한국정사의 편모나마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 또한 간절한 바 있다.

강량부는 은(殷)과 이와 사가 같은 글자라고 했고 은나라의 백성들이 억조의 이인으로 이뤄졌고 심지어 난생신화설 까지도 은(殷)과 조선이 그 궤를 같이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와 난생신화에 대해서 상고해 보자 이를 「오랑캐」라고 자학적인 훈을 붙인 한국적동이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규명해 보자는 말이다.

朝鮮東夷天性柔順異於三方之外.夷東方人也從弓夷字作尼與古文仁同盖憫從?狄從大?從貊姜從羊皆異種夷獨從大夷俗仁壽有君子不死之國故子欲居九夷也.(說文 通訓定聲)

조선은 동이인데 천성이 유순하여 서남북 3방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는 동방인이다. 대를 쫓아 궁을 쫓아서 된 글자이다. 이자는 「니」로도 적는데 고문의 「인」과 같다. 대개 민(?)((남방족 복건성 근방)은 벌레를 쫓아 된 글자이고 적(狄)(북방족)은 개를 쫓아 된 글자이고 학(?)은 발없는 짐승(벌레)을 쫓아 된 글자이며, 강(서방족)은 양을 쫓아 된 글자인데 고로 공자님께서도 구이 땅에 살고 싶다한 것이다.

이 글은 한문옥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설문의 통훈정성편이다. 서남북의 오랑캐들을 모두 개 벌래…등으로 욕칭 하면서도 이에 대해서만은 인(어질고)하고 수(오래 산다)하고, 천성유순하고, 군자불사지국이며 큰 활을 가진 사람(이=「대」,「궁」,「인」)이라고 예찬했다.

夷者仁也仁而好生萬物戎者凶也斬伐殺生不得其中蠻者慢也君臣同川而浴極爲簡慢狄者僻也父子嫂叔同穴而居其行邪僻. (禮記 12 王制 東方曰夷疏)

이는 인하여 만물을 살리기를 좋아한다. 융은 흉하여 참벌살생에 중용을 얻지 못했고 만은 만(게으름) 이어서 군신이 같은 개천에서 목욕하며 극이 가만(게을러 남을 모욕함.) 하다. 적은 벽(천하다)이다. 부자수숙(형수와 숙부)이 같은 굴에 살며 그 행실이 사벽(질서 없음)하다.

朝鮮東夷天性柔順異於三方之外?註
師古曰三方謂南西北也故孔子悼道不行浮浮於海欲居九夷有以也. 註
師古曰孔子欲乘?筏而適東夷以其國有仁賢之化可以行道也.
(前漢書 券二十八下 地理志)

조선은 동이인데 천성이 유순하여 3방밖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사고가 주를 붙여 말하기를 「3방」이란 남방, 서방, 북방을 말한다. 그래서 공자님도 도가 중국 땅에 행해지지 않음을 슬퍼하여 뗏목을 바다에 띄워서라도 구이 땅에 가서 살고 싶다. 한 것이다. 「공자가 뗏목을 타고 동이에 가고 싶다 한 것은 그 나라(동이)에는 인현의 교화가 있는 나라이므로 가히 도를 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殷契母曰簡狄 有娥氏之女 爲帝擧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 其卵 簡狄取呑之 因孕生契(史記?三卷 殷本記)

은나라 시조 설왕의 어머니는 간적인데 유융씨의 딸로서 제고고신씨의 차비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목욕을 하는데 검은 새(현조)가 그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그 알을 취하여 삼키니 이로 인해 잉태하여 설을 낳다.

물경! 진시황도 정통동이족의 후예로서 난생신화의 조국신화를 갖고 있다.

秦之先帝?頊之 苗孫曰女修 女修織 玄鳥隕卵 女修呑之 生子大業 (史記第五 秦本記)

진의 선제인 유욱고양씨의 묘손(먼후손)에 여수가 있었는데 여수가 베틀을 짜는데 검은 새(현조)가 알을 떨어뜨리는지라 여수가 이를 취하여 삼키니 이로 인해 아들 대업을 낳다.

일반적으로 동양고대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중국사가 한국사보다도 먼저 출발한 역사다"하는 그릇된 관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사가 중국사보다 약 2500년~3000년이나 앞선 역사라는 사실을 일반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오지족이 되어있는 묘족은 고조선족이 중국에 진출하여 얻은 이름인데 저들은 오늘날로 한자발음을 중국식 아닌 한국식으로 하고 있다[(예)학교를 중국 발음으로[샤우,조우]로 하지만 묘족은 [학교]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

동양고대사에서 저 유명한 천우는 황제 헌원과 싸우고 중원 땅을 무력으로 누빈 고대동방의 천자지명으로 중국사에서 알려지고 있는데 바로 이 천우가 묘족(호근 삼묘)의 나라-「구려」의 군주였다. 그런데 후대에 한국의 국호가 고구려, 구려, 혹은 고려로 된 것은 그 어원이「구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KOREA(코리아)의 어원 역시「구려」[어문학자 김선기박사는 구려.구루.가라.구리.등이 모두나라를 가르키는 한국고대어라고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왕동치등 중국사가들은 이 묘족이 한족보다도 먼저 중원 땅을 점령했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當四千年前 漢族未入中國以前 現在湖北, 湖南, 江西 等地 巳經有苗族占領 比族之國名九黎 君主名蚩尤 (王?齡?中國民族史 四面)

4000여년 전 한족이 중국에 아직 들어오기 전에 현재의 호북, 호남, 강서등지는 이미 묘족이 점령하고 점유하고 있었다. 묘족의 국명은 구려이며 군주의 이름은 천우이다.

참고사항

漢族未入中國以前中國之中部及南部本爲苗族所居至漢族移入後漸與接燭(鳥居龍藏?苗族調査報告?林惠祥?中國民族史上卷第五章
炎黃之世南有黎苗世處南服…… 大低上古之時江漢之區皆爲黎耕(林惠祥?同書)

한국의「은(殷)」성이 황하문명의 주체족인 한국사의 남조 은족의 후예라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은족이 만든 문자 은문(殷文)이 모체가 되어 현용한자문명이 이뤄졌고 더욱이 현용 53,525자의 한자가 예외 없이 모두 한국식 발음으로 반절음(한자의 발견기호)이 적혀 있다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황하문명의 주체족은 중국인이 아니요 한국족이다」인 동시에 "그 핵심 씨성은 바로 한국의 희성「은(殷)」씨다"하는 인식이 하루 속히 주지되도록 해야겠다.

각설 한문문화~황하문명은 중원대륙의 황하권을 장악한 자의 문명이다. 또 황하문명의 꽃이요 심볼(상징)이라할 갑골문자와 역서(법)등은 오로지 동이족의 정통왕조인 「순-은」대에 완성된 산물이다.

「東夷造歷 實無疑問」(동이가 역을 만든 것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을 말하는 서량지나 「古朝鮮之何在? 姜亮夫以爲 朝鮮本殷民族分布地……」를 단정하는 임례상등 중국의 현 역사가들은 동이(=조선)가 황하문명의 주인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조선은 황하문명의 주인이요, 한자문명의 주인공이다.」이와 같은 정의는 과시 동양문화사 내지 동서역사(세계사)의 개조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요, 그래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은의 문자(갑골문자) 이래 한문의 현재까지」의 참 주인공을 규명키로 하자.
이미도 말한 것처럼 현존 한자 53,525자가 모두 우리말의 이두문(설총의 이두문보다 앞선 상고시대의 이두문)으로 발음기호-반절음이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과소평가해도 심상치 않은 시사를 주는 일이다. 한 두 글자의 예외도 없이 53,525자 모두가 한국발음으로 적혀졌다는 사실 또 이 같은 발음표기가 옥편상에 쓰여진 전통과 그 역사만도 물경 2000년이다. 이제 그 전말을 살펴보자.

반절음이란 한자음문법으로써 어떤 문자의 음을 표기할 때 이미 아는 두 글자의 음 즉 상자의 상지「성」과 하자의「운」을 합하여 별개의 일음(一音)을 구성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학」 「교」를 옥편에서 찾아보자.

한자옥편
한자 발음기호 발음 반절음해설…필자의 주
할각절
Hsiao
한국 : 학 상지「활」에서「ㅎ」
하지「각」에서「악」
합해서 「학」
중국 : 쉬아오
거효절
Chiao
한국 : 교 상지「활」에서「ㅎ」
하지「각」에서「악」
합해서 「학」
중국 : 촤오

「학」자를 옥편에서는「할각절」(할각판이라고도 한다.최근에는 반이판과 통한다고해서 반대신 절만을 쓴다.그래서 반절음이라 통칭한다)곧「할각절」(절은 뜻없음)이라 적어 윗글자의「ㅎ」와 아랫글자의「악」, 곧「악」을 합호하여「학」이라고 발음한다고 옥편상에는 기록해놓고 중국인들은 이 반절음의 발음을 무시하고 「쉬오」(쉬아오)로 발음한다. 말하자면 옥편상의 발음은 중국인에게는 사음이거나 무용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민국7년(1918년)11월에 제정한 주음자모 40자(현용37자)와(별표참조) 영국인 Sir Thomas Wade(1818~1895)가 만든「한자음의 로마자표기방법」이른바 웨이드식「Wade-Style」표기법을「반절음 표기법」의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위의「학」「교」에서 보이는「ㅜㅡ요」나「ㅚㅡ요」가 주음자모이며, Hsiao나 Chiao가 「웨이드」식 표기법이다.

보라! 2000년 동안 「집운」,「광운」……「강희자전」등 역사의 옥편 자전이 전통적으로 표기해 내려오고 있는 「반절음」을 완전무시하고 저들은 옥편상의 지시대로 발음 하기를 거부하여 음운기호나 「웨이드」식 발음부호를 창설하였다.

옥편상의 반절음표기이래 한문의 전통과 권위를 지켜온 겨레는 누구인가? 항차 한자를 최초로 만든 민족은 한국족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희성인 은씨(殷氏)의 조상 「은나라」사람이다. 그런데 이 「은나라」사람들이 "중국사 람이다"하는 종래의 해묵은 통념을 깨고 "은나라 사람은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이다"하는 새로운 사관이 정입 되었다는 사실! 이러한 입장전이적 사관을 위에서 누누이 밝힌 바 있다.

과연 한국사는 황하문명의 「영광과 위대」라는 긍지와 그 소유권! 소속감을 회복해야할 때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패배주의적 자학의 조국관 또는 사대주의적 맹단의 문화관이 일소되고 참된 민족사적 주체성 정통성 긍지가 광복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황하문명에 직접 관여하여 갑골문자를 만들고 역서를 만들고 음양오행사상을 이미 생활화했던 동양문화의 요람구실을 한 은족(殷族)의 영광과 긍지를 보다 종심 있고 광범하게 탐구해 나가야 될 것이다.

오늘 한국의 희성 은씨(殷氏)제위께서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참된 「희소가치!」를 발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오직 조국의 정사를 광복하는 길 밖에 없다는 뚜렷한 인식이 있어지기를 합창하며 소원한다.

이 같은 논리는 정사광복에 심혈을 경주하는 일개사학도의 부질없는 꿈이 아니고 비록 이 말이 선지적 예언의 구실은 못할망정 정사를 광복하고 은씨(殷氏)문중과 은문화(殷文化)의 유신 부활을 목마르게 외치는 저 "광야의 일성"이 되어 한국사의 앞길을 예비하는 등대지기나 파수꾼의 역할은 족히 하리라 믿고 이 글을 한국사의 태성 은씨(殷氏)문중 제위 앞에 간략한 고증자료로 바친다.

서기 1977년 9월 1일
한국정사학회 회장 임승국 삼가 씀